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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한 기억

흰여우* 2015. 1. 28. 13:55

지난 기억을 까먹지 않기 위해 self-induced 공개망신글을 올려보려 한다.


지난 여름부터 학교 소개로 법원에 사법통역을 나가고 있다. 초반에는 극도로 긴장해서 공소장도 다 번역하고 나올 만한 표현들을 전부 외워갔는데,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케이스 관련 용어만 지하철에서 한번 훑어보고 가는 정도로 태만했는데.. 결국 일이 터졌다. 



판사님: 피고인은 ~~하지만 ~~ 러한 양형사유를 참작해서...

나: The defendant committed ~~~ however considering the following factors ~~~


여기까진 오케이. 이전 공판에서 다룬 내용과 주제들이니


판사님: ~~하기 때문에 피고인은 증거를 토대로 유죄이다 


.. 유죄가 뭐더라...? 유죄...??? 



"유죄" 라는 간단한 단어가 영어로 뭔지 생각이 안 나는거다.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서 막히니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속으로는 멘붕 그 자체였다. 판사님은 내가 말이 없자 한번더 또박또박하게 "유죄입니다"를 말씀하셨는데 그때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


나: ~~~ therefore.....the defendant...... made wrongdoings 


wrongdoings?! wrongdoings...!!! 나와서는 안될 말이 나와버렸다..ㅠ 그 다음 내용을 어떻게 전달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 데미지가 상당했다. 


분한 마음으로 네이버사전을 찾아보니 found guilty. 너무 쉬운 단어였던 거다. 맥이 풀려 멍한 상태로 어떻게 학교까지 걸어갔는지.. 



잘 한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위험하다. 특히나 사법통역은 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일이니 5분짜리 통역이라도 방심 말고 늘 긴장. 조심. 준비는 철저히 합시다..!